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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조로 풀다

1592년 5월 23일에 일본군이 부산으로 쳐들어왔다. 단 20일 만에 일본군은 텅 빈 한양에 무혈 입성했다. 선조 임금은 그 며칠 전에 어둠을 틈타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조선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났다. 남쪽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을 격파하였다. 명나라가 지원군을 보내왔다. 1598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일본군은 비로소 철군하였다. 조선 조정의 대신들은 임진왜란 전에도, 전쟁 중에도, 종전 후에도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대립하였다. 임진왜란으로 10만여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압송되었는데 귀환한 사람들은 7,500여 명에 불과했다. 서해 유성룡은 후세들이 다시는 치욕의 참화를 겪지 않도록 경계하..
1592년 5월 23일에 일본군이 부산으로 쳐들어왔다.
단 20일 만에 일본군은 텅 빈 한양에 무혈 입성했다.
선조 임금은 그 며칠 전에 어둠을 틈타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조선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났다.
남쪽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을 격파하였다.
명나라가 지원군을 보내왔다.
1598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일본군은 비로소 철군하였다.

조선 조정의 대신들은 임진왜란 전에도, 전쟁 중에도, 종전 후에도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대립하였다.

임진왜란으로 10만여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압송되었는데 귀환한 사람들은 7,500여 명에 불과했다.

서해 유성룡은 후세들이 다시는 치욕의 참화를 겪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 《징비록》을 남겼다.
그런데 300여 년이 지나 1910년 8월 29일에 일본에 우리나라를 완전히 빼앗겼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함으로써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지만, 일본제국주의의 상흔은 아직도 우리의 곳곳에 남아 있다.

이에 다시 ‘징비’함이 마땅하기에 임진왜란의 기록들을 읽고 700수의 시조로 풀어 보았다.
고전과 역사 속에서 지혜를 채굴하면서 시조 짓기를 좋아한다.
《논어 시조로 풀다》, 《맹자 시조로 풀다》, 《대학ㆍ중용 시조로 풀다》, 《우리나라 역대 왕이름을 시조로 풀다》, 《한국 독립운동가 시조로 풀다》 《임진왜란 시조로 풀다》 등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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