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전거 타기로 나 자신의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자전거 타기 그램드슬램을 달성한 후, 자전거 타고 문학관을 찾아가는 특별한 여정을 시작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탐색하며 문학관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오직 자신의 힘으로 페달을 밟아야만 자전거가 나아가는 것처럼 홀로 고뇌하며 위대한 작품을 남겨 어둠을 밝힌 작가와의 만남은 또 다른 내 삶의 전환기(轉換器)요, 충전기(充電器)이며, 세탁기(洗濯機)이고, 보자기이자 소나기로 다가왔다. 또한 이 위대한 지성들은 평생토록 내 삶의 탐지기이며, 격동기(激動期)이고, 나를 생채기 내어 성숙하게 하며, 나만의 고유한 삶에 한없는 위안을 안겨주었다.
채만식은 1924년 「세길로」를 통해 등단하여 일제강점기 암울한 사회현상, 지식인들의 무기력함, 하층민의 가난과 고통에 대한 단편ㆍ 장편소설 200편과 수필, 희곡 등 약 1,000여편의 저항 작품을 집필했다.
1937년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저항하던 백릉은 '독서회사건' 가담자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모진 고문에 시달리며 결국 일제의 회유와 압력으로 인하여 일제에 굴복하고 5개월만에 풀려나 친일작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1939년부터 1945년 해방기까지 친일 일간지 매일신보 등에 친일 작품들을 남겼다.
1945년 초 채만식은 사회 · 경제적 어려움 속에 고향인 임피면으로 낙향하였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다. 광복 후 채만식은 친일작품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고, 1948년 10월부터 1949년 1월까지 「백민白民」을 통해 본인의 친일 작품에 대한 후회와 반성을 담은 중편소설 「민족의 죄인」을 기고한다.
이 소설을 통해 채만식은 광복 후 남아있는 일제의 문화잔재를 비판하고, 친일행위에 대한 개념규정과 당대 지식인의 고뇌 등을 다루며, 자기반성을 하였다. 채만식이 집필한 「민족의 죄인」은 친일작품을 남긴 작가 중 유일하게 자신의 과오와 반성의 마음을 남긴 작품이다.
지은이 이길호
역사 서적과 고전을 읽고 시조 짓기를 좋아한다.
《논어 시조로 풀다》, 《맹자 시조로 풀다》, 《대학ㆍ중용 시조로 풀다》, 《우리나라 역대 왕이름을 시조로 풀다》, 《한국 독립운동가 시조로 풀다》, 《임진왜란 시조로 풀다》, 《채근담 시조로 풀다》, 《독도 시조로 지키다》, 《영웅 안중근 시조로 우러르다》 등과 《자전거 타고 문학관 기행》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