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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철학여행

어린 왕자는 자신의 행성을 깨끗이 정돈하기 시작했다. 우선 활동 중인 점심 데우기에 제격인 두 개의 화산 분화구를 청소한 다음 꺼진 화산도 청소했다. 또한 장차 자라면 그의 행성을 터트려버릴 바오밥나무의 새싹들도 뽑아냈다. 그리고 정든 꽃과도 작별인사를 했다. 어린 왕자는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이 지루한 반복적인 일상에서 탈피하여 자유 여행을 떠났다. 자유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자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면서 자신을 새로운 주체로 변형시킬 수 있는󰡑데서 찾아야만 한다. 물론 이러한 능동적 창조의 과정에는 타자와의 마주침이라는 불가피한 단서가 붙는다. 마치 대붕이 엄청난 바람과 마주쳐서 구만리 상공에 올라야 진정한 의미의 대붕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타자와 마..
어린 왕자는 자신의 행성을 깨끗이 정돈하기 시작했다. 우선 활동 중인 점심 데우기에 제격인 두 개의 화산 분화구를 청소한 다음 꺼진 화산도 청소했다. 또한 장차 자라면 그의 행성을 터트려버릴 바오밥나무의 새싹들도 뽑아냈다. 그리고 정든 꽃과도 작별인사를 했다. 어린 왕자는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이 지루한 반복적인 일상에서 탈피하여 자유 여행을 떠났다.
자유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자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면서 자신을 새로운 주체로 변형시킬 수 있는󰡑데서 찾아야만 한다. 물론 이러한 능동적 창조의 과정에는 타자와의 마주침이라는 불가피한 단서가 붙는다. 마치 대붕이 엄청난 바람과 마주쳐서 구만리 상공에 올라야 진정한 의미의 대붕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타자와 마주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며 마침내 자신을 새롭게 변형시킬 수 있다.

어린 왕자는 반항은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자신의 권위가 존중받기를 바라는 절대 군주가 다스리는 별을 첫 번째로 방문했다. 오직 명령만을 내리는 왕을 피해 떠나려 하자 그 왕은 급하게 “짐은 너를 대사로 임명하노라.” 하고 왕이 소리 질렀다.
동서양의 경우 모두 전근대사회에서는 국가의 주권자, 혹은 왕 자신이 신과 같은 절대자이거나 혹은 초월적인 절대자의 지배를 대리하는 존재라고 간주되었다. 서양의 경우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과 같은 것, 그리고 중국의 경우 동중서의 왕도(王道) 논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타인들의 공격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국가와 주권자를 만들기로 서로 약속했다는 사회계약론에 입각해서 국가를 정당화하려고 했던 근대철학자 홉스는 "국가는 문명사회의 상징이다”고 주장하였고, 진정한󰡐문명'이란 것은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독립적인 자유인들의 공동체로 사유한 클라스트르는 "국가는 문명이 아닌 야만적 상태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어린 왕자는 자신만을 숭배하고 칭찬해주기를 바라는 허영쟁이가 사는 행성을 두 번째로 여행하였다. 허영쟁이에게는 오로지 칭찬만 들렸고 숭배한다는 건 그가 그 별에서 가장 잘 생겼고, 가장 옷을 잘 입고, 가장 돈이 많고, 가장 똑똑하다는 걸 인정하는 거라며 어린 왕자가 자신을 숭배해주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인정받기를 원하며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며 산다.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은 항상 외부로부터 칭찬 혹은 찬양을 받으려고 갈망하는 존재이다. 물론 자신의 행실이 타인의 칭찬과 찬양에 부합되는 것이라면, 별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불행히도 인간이 과도한 칭찬이나 찬양을 욕망한다는 데 있다. 독재자는 훌륭한 통치자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 하고 바람을 피우는 사람조차도 지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심지어는 도둑도 정직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이것은 사람의 허영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 준다. 허영이란 글자 자체가 이미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이 글자는󰡐비어 있다'라는 의미의󰡐허'(虛)란 글자와󰡐꽃이 화려하게 핀다'는 의미의󰡐영'(榮)이란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내실은 비어 있지만 겉은 매우 화려하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인정’개념을 악셀 호네트는 그의 저서 『인정투쟁』에서 ‘사회적 조건이자 각 개인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관계, 즉 긍정적인 자기의식을 가지게 하는 심리적 조건’이라고 정의하였다. 호네트가 인정이라는 개념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세 가지 형태이다. 사랑, 동등한 권리인정, 사회적 연대, 이 세 가지 인정을 통해 각 개인은 비로소 한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다음으로 어린 왕자는 술꾼의 행성을 방문하여 왜 술을 마시느냐고 술꾼에게 묻자 술꾼은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서 그것을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고 대답하였다.
플라톤에서부터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기억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이 서양철학사의 중심부를 관통하고 있다면, 동양철학 전통에서는 오히려 이와 반대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인도의 나가르주나(Nagarjuna)는 공(空)을 이야기했고, 중국의 장자는 허(虛)나 망(忘)의 가치를 긍정했으며, 선불교의 혜능도 무념(無念)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특히 장자의 망이란 개념은 동양의 철학자들 상당수가 기억보다는 오히려 망각을 최고의 가치라고 긍정했던 것을 잘 보여 준다.

어린 왕자가 네 번째 방문한 별은 사업가의 별이었다. 사업가는 말한다. “네가 주인 없는 다이아몬드를 발견하면 그건 네 것이지. 주인 없는 섬을 발견하면 그건 네 섬이고. 네가 어떤 생각을 제일 먼저 했다면 특허를 내. 그럼 그것이 네 것이 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별들을 소유하는 거야. 나보다 먼저 별을 가지려고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좀 더 많이 돈을 벌기 위해 사업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낸다.
우리는 산업혁명 이전 시대의 자본주의를 상업자본주의라 부른다. 상업자본과 산업자본은 자본을 통해서 잉여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동일한 것이다. 하지만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에서는 자본의 두 형식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상업자본이 공간적 차이를 이용해서 잉여가치를 창출한다면, 산업자본은 시간적 차이를 이용해서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서양에서 기독교 특유의 금욕주의가 절약과 근검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정신을 가능하게 해주었다고 그의 저서『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주장했다. 1970년, 베버의 입장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충격적인 책이 하나 등장한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의 『소비의 사회』라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의 저자 보드리야르는 산업자본주의 발달의 핵심에는 기술 개발에 의한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허영과 욕망을 부추기는 유혹적인 소비사회의 논리가 있다고 선언한다.

해가 갈수록 점점 빨리 도는 행성에서 가로등지기는 가로등을 켜고 끄느라 잠을 잘 수도 쉴 수도 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노동을 통해 삶의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데 오히려 노동의 포로가 되어 행복한 삶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과거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술 진보를 이룩했다. 지금은 우주여행과 인터넷과 유전자 공학의 시대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힘 앞에서 이토록 무력감을 느낀 적도 없다. 전에는 우리의 노동 생산물이 우리의 존재 자체를 위협한 적이 없다. 지금은 핵 재앙과 지구 온난화와 무기 경쟁의 시대이기도 하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 전체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남을 만큼 생산할 수 있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빈곤으로 성장 장애를 겪고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우리는 자연을 통제할 힘이 있지만, 우리 사회의 특징은 불안정성이다. 경제 침체와 군사적 충돌이 마치 불가항력의 자연 재앙처럼 우리 삶을 파괴한다.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아질수록, 고독하게 외톨이로 사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마르크스는 소외 이론을 발전시켜서, 사회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비인격적 힘의 이면에 인간의 행동이 있음을 밝혀냈다. 마르크스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양상들이 우리와 무관하고 자연발생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거 인간 활동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 줬다.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가 만연하는 구체적 방식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한 재화로부터 소외당한다. 다른 사람, 즉 자본가가 노동자의 생산물을 소유하고 처분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요소는 생산과정에 대한 통제력 상실이다. 노동 조건, 노동이 조직되는 방식, 노동이 우리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리는 발언권이 없다.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력 상실은 우리의 창의적 노동 능력을 대립물로 바꿔 놓는다. 또한, 노동자는 같은 인간으로부터 소외된다. 이 소외는 부분적으로는 계급 사회 구조에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는 적대에서 비롯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착취하고 생산물을 통제하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한다. 마르크스가 “유적(類的) 존재”라고 부른 인간 본성으로부터의 소외다.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주위 세계를 의식적으로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우리의 노동은 강요받는, 강제된 노동이다. 노동은 개인적 선호나 집단적 이익과 아무 관계도 없다. 자본주의 분업은 생산 능력을 엄청나게 증대시켰지만,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주장한다. “소외의 근원이 자본주의 사회이므로 그 사회에 맞선 집단적 투쟁만이 소외를 근절하고 날로 발전하는 우리의 막대한 능력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으며 노동을 다시 삶의 중심으로 확립할 수 있다.”

어린 왕자가 찾아간 여섯 번째 행성의 지리학자는 영원한 것, 객관적인 것만을 기록한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죽은 뒤 세계가 자신이 보고 있는 그대로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마치 방 안에 놓인 가구들 중 하나를 빼 버린 것처럼 자신만이 세계로부터 빠져나오고 나머지 것들은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객관주의(objectivism)의 시선이다. 흥미로운 점은󰡐객관적 세계'가 생물종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실 다른 면에서 보면 모든 생명체들과 독립된󰡐객관적 세계'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자신의 철학을󰡐코페르니쿠스적 혁명 혹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에 비유했던 적이 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관심을 외부 대상으로부터 그 대상을 가능하게 하는󰡐주체의 자발적인 능력'으로 전환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내 앞에 둥근 사과가 있다고 하자. 칸트 이전에는 둥근 사과의 본질이나 존재를 묻는 것이 철학자의 임무였다. 이것이 바로󰡐대상'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질문이다. 하지만 칸트는 우리의 인식 능력이 없다면 둥근 사과는 존재할 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사물 자체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물 자체는 부단히 우리 마음을 촉발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촉발을 계기로 해서만 우리 감성과 오성은 대상에 대한 표상을 수용하고 산출할 수 있게 된다.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이 물음을 통해 니체는 사물 자체의 존재란 단지 현상세계에 대한 앎, 혹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 사후적으로 추상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폭로했다. 다시 말해 "사물성이란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칸트가 현상세계 너머를 엿보려고 할 때, 니체는 현상세계를 그 자체로 긍정하려고 했다.

마침내 어린 왕자는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에 도착했다. 인간은 자신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주장하는데 과연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가?
데카르트는‘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고 선언함으로써 인간 중심주의 철학의 시발점을 알렸다. 데카르트에게 인간의 양식은 그의 말대로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하는 능력”, 즉 이성을 의미했다. 그는 모든 인간이 양식, 즉 이성을 천부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분명 대다수 인간이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이유나 근거가 데카르트의 생각처럼 명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심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를 통해서 인간이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분명하게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를 포함한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과 믿음 역시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나 소박한 소망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과거에 살았던 인간들을 되돌아보아도, 아니면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인간들을 살펴보아도, 우리는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은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기보다 오히려 권태, 탐욕, 잔인, 자만, 허영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파스칼은 데카르트와 달리 우리의 마음에는 이성보다는 오히려 심정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게 된다. 바로 이 심정의 측면에서 현실적 인간의 모습을 엿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 책은 내 집 서가에서 발견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강신주의 『철학vs철학』의 우연한 마주침을 통해 ‘창조적 자기복제와 생성’을 거쳐 탄생하였다.
저자 이길호

고전과 역사 속에서 지혜를 채굴하면서 시조 짓기를 좋아한다.
《논어 시조로 풀다》, 《맹자 시조로 풀다》, 《대학ㆍ중용 시조로 풀다》, 《우리나라 역대 왕이름을 시조로 풀다》, 《한국 독립운동가 시조로 풀다》, 《임진왜란 시조로 풀다》, 《채근담 시조로 풀다》, 《시조로 쉽게 정리한 고교한국사》, 《독도 시조로 풀다》, 《성웅 이순신 시조로 우러르다》, 《지금 바로 당장 아이와 함께 공부 다시 시작하기》, 《자전거 타고 문학관 기행 윤동주 문학관》 등 시리즈 10권, 고전 인물탐구로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등 30여 권의 전자책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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